사법 리스크 굴레 벗은 이재용, ‘뉴 삼성’ 글로벌 경영 큰그림
첫 행보는 손정의‧샘 올트먼과 오픈AI 한·미·일 AI 협력 회동
한국금융경제신문=장용준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와 관련해 1심과 2심에서 연이은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10년 동안 옥죄어 온 사법 리스크를 벗어났다. 그간 미래사업 방향성에 대한 불안감이 존재했던 삼성도 글로벌 경영을 비롯한 미래 신성장동력 찾기를 가속화하는 큰그림을 그릴 것으로 전망된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3부(백강진‧김선희‧이인수 부장판사)는 전날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원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이 회장은 지난해 11월 25일 항소심 최후진술에서 “최근 들어 삼성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저희가 맞이하고 있는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 녹록지 않지만, 어려운 상황을 반드시 극복하고 앞으로 한발 더 나아가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최근 주력인 반도체 사업에서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을 선점한 SK하이닉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밀린 삼성전자였기에 선장인 이 회장의 이후 행보에 관심이 모아졌다.
4일 사법 리스크 굴레에서 벗어난 이 회장의 첫 행보는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와의 회동이다. 이 자리에서는 한·미·일 인공지능(AI)협력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올트먼 CEO는 삼성전자 최고위급 임원들과 만남이 예정됐다. 하지만 전날 오후 이 회장의 2심 무죄 판결에 따라 계획이 변경됐다. 이 자리에 손 회장도 이날 오전 김포공항으로 입국하면서 3자 회동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손 회장과 올트먼 CEO는 소프트뱅크와 오픈AI의 5000억달러(약 720조원) 규모 AI 인프라 프로젝트 ‘스타게이트’ 합작 파트너십을 이루고 있으며, 손 회장은 오픈AI를 대상으로 미국 스타트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였다. 최근 소프트뱅크는 오픈AI에 150억∼250억달러를 직접 투자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는 스타게이트가 초거대 AI데이터센터 구축과 이를 운영하기 위한 발전소 건립 등을 추진하는 프로젝트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파트너사로 참여하고, 반도체와 전력 등의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보니 올트먼CEO과 손 회장은 이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스타게이트에 필요한 반도체와 다른 자원에 대한 협력을 논의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 같이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 굴레가 벗겨진 지 하루 만에 글로벌 경영에 박차를 가하는 행보가 이어지면서 선장을 되찾은 삼성전자가 지금과는 다른 적극적이고 과감한 투자를 감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이는 2심 무죄 판결에 따라 이 회장이 자유롭게 해외 출장을 떠날 수 있게 된 영향이다. 그동안 촘촘히 짜여져 있던 재판 일정에 따라 출장과 회동 일정을 잡을 수 없었으나 이제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 주요 파트너사의 CEO를 만날 수 있게 됐다.
이 회장이 다음달 17~2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엔비디아가 여는 ‘GTC 2025’에 참석해 젠슨 황 엔비디아 CEO 회동할 것인 지 여부도 관심이 쏠린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사업에서 예상치보다 실망스러운 실적을 거뒀고, 이에 고대역폭메모리(HBM) 주공급처가 될 수 있는 엔비디아와의 관계 정립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이다. 회동이 이뤄진다면 이 회장이 양사의 협력관계를 재정립하고 HBM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격적인 경영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오너인 이 회장이 젠슨 황 CEO를 만나야 무게감이 크고,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과감한 결단을 통한 ‘뉴 삼성’의 틀을 완성한다는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며 “과거의 미전실과 같은 컨트롤타워도 재구성해 글로벌 경영의 큰그림을 그려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