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선심성 빚 탕감 공약…갚은 사람만 바보?
한국금융경제신문=김선재 기자 |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본 투표일 기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각 후보들은 저마다 다양한 공약을 걸고 대선에 임하고 있는데, 공통적으로 ‘채무 탕감·조정’ 등을 골자로 한 선심성 공약을 내걸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코로나19 당시 받은 정책자금 대출에 대한 채무조정부터 탕감을 지원하고, 장기 소액 연체 채권 소각 등 부실자산을 정리하는 기관인 배드뱅크 설치를 공약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새출발기금의 역할을 크게 넓혀 이들의 금융부담을 낮추겠다고 했다. 새출발기금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해 원금이나 이자 감면, 상환기간 연장 등의 방식으로 금융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2022년 도입된 제도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을 돕기 위한 취지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자칫 ‘빌린 돈을 갚지 않아도 나라에서 해결해준다’는 잘못된 신호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우려된다. 특히, 각 후보들이 조정이나 탕감해주겠다고 하는 채무는 이미 코로나19 당시부터 은행권을 중심으로 한 원리금 상환유예 및 만기연장, 수조원대 정책자금 투입 등을 통해 조정돼 온 것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그러는 사이 은행권은 깜깜이 상태로 충당금을 쌓으면서 연체율 상승 등 건전성 악화를 견뎌야 했다. 올해 1분기 기준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액은 1조97억원에서 1조3393억원으로 32.6% 늘었다. 이에 따라 연체율은 평균 0.39%에서 0.51%로 0.12%p 상승했다.
그렇다면 결국 이들에 대한 지원 방식이나 경로 등에서의 오류 여부에 대해 점검하고, 이를 수정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고 발전적인 방안일 테지만, 후보들의 공약에서 그런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눈앞에 표를 목적으로 한 설익은 공약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애쓴 이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됐고, 은행들의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한 대출 문턱을 높일 요인만 제공했다. 실제로 이들 은행의 올해 1분기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267조7771억원으로, 전년 대비 0.1% 증가에 그쳤다.
정치적 논리에 맞춰 시장 질서를 무시한 채 추진된 정책은 결국 금융소비자의 비용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을 잡겠다며 은행에 놓은 엄포는 대출금리 인상으로 이어졌고, 차주의 이자부담만 가중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선거 때만 되면 나오는 퍼주기 공약은 반드시 부작용을 낳는다. 특히, 채무 조정과 관련한 이같은 선심성 공약은 자칫 금융시장 질서를 왜곡하고, 더 나아가 업의 근간인 신뢰를 무너뜨려 비용을 늘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히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엄격하게 이뤄져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단기 처방이 아닌 구조 개선을 통한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이다. 눈앞의 표, 당장의 자리보전에 급급해 이합집산하는 정치권 논리를 국민 현생에 들이대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