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주주 요건 하향, 주식시장 옥죄는 ‘퇴행적 사고’
한국금융경제신문=양지훈 기자 | 새 정부 출범으로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주가 부양을 위한 법안이 추가로 발의되는 등 주식시장 활성화를 향하는 과정이 진행 중이다. 다만, 일각에서 제기되는 대주주 요건 하향 검토는 공감하기 어렵다. 이미 시장에서 답이 나왔는데도 과거로 역행하려는 움직임이나 다름이 없다.
현행 대주주 기준은 보유주식이 50억원 이상 혹은 지분율이 ▲코스피 1% ▲코스닥 2% ▲코넥스 4% 이상인 경우다. 한 종목을 50억원 이상 보유하고 있으면 이른바 ‘큰손’이라는 의미다. 주식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대주주 요건은 ▲2013년 50억원(혹은 코스피 지분율 2% 이상) ▲2016년 25억원(혹은 지분율 1% 이상) ▲2018년 15억원 ▲2020년 10억원으로 꾸준히 하향 조정됐다가 2024년 50억원 이상으로 완화됐다.
문제는 타이트한 대주주 요건이 주식시장에 악영향을 준 사례를 우리가 이미 여러 차례 목격했다는 것이다. 대주주 요건을 이유로 대규모 매도 공세가 이어지는 과정은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연말마다 발생하는 일종의 연중행사였다. 2022년 12월에는 주식시장의 ‘큰손’들이 하루 사이 약 1조5000억원을 매도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기준으로 개별종목 10억원 이상인 대주주에 부과되는 양도소득세는 연말 주주명부폐쇄일 2거래일 전까지 주식을 매도하면 내지 않아도 됐다. 이를 토대로 연말만 되면 종목당 보유액을 대주주 요건 미만으로 낮추려는 움직임이 활발했다. 즉, 대한민국 주식시장은 12월만 되면 이른바 ‘왕개미’가 세금 폭탄을 피하기 위해 지분율을 낮추려는 현상이 반복됐다.
이처럼 대주주 요건 하향이 주식시장의 원활한 흐름을 가로막는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는데도 정부가 대주주 요건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되돌리겠다면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세수 충족을 위해서라면 대주주 요건 하향 외에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
개인투자자 권익보호 단체인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는 “증시 활성화를 통해 걷는 세금으로 부족한 세수를 채우는 것이 모범답안”이라고 강조해왔다. 시중 자금과 외국인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계속 유입된다면 거래 활성화로 이어져 거래세가 증가할 것이라는 논리다.
늘 그랬듯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은 거세다. 한투연 측은 전일 “만약 정부가 (대주주 요건을) 10억원으로 하향한다면 개인투자자들과 연대해 강력한 규탄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며 세수를 메우려면 다른 방안을 마련해 볼 것을 권했다.
대주주 요건 하향은 주식시장을 옥죄는 퇴행적 방식이다. 요건을 피하기 위한 회피 물량이 연말에 재차 쏟아질 게 뻔하고, 증시 침체를 유발해 오히려 세수가 줄어들 수도 있다. 이재명 정부가 코스피 5000을 목표로 진지하게 증시 활성화를 지향한다면, 대주주 요건 하향이라는 악수는 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