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또 시작된 상생 명목 금융권 팔 비틀기

2025-07-18     김선재 기자
사진=김선재 기자

한국금융경제신문=김선재 기자 | 전 정부에 이어 현 정부도 금융권을 향해 ‘상생’을 명목으로 한 재원 분담을 압박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장기 연체자의 채무 조정을 위해 ‘배드뱅크(장기 연체채권 채무 조정 프로그램)’ 설립을 위한 재원 8000억원 중 4000억원을 2차 추가경정예산(이하 추경)을 통해 확보하고, 나머지는 금융권과 협의를 통해 마련하기로 했다.

4000억원 출연은 당초 은행권 단독으로 이뤄질 계획이었지만, 채무 조정 대상이 되는 장기 연체 채권의 대부분이 제2금융권에 몰려있는데, 은행 단독으로 출연을 진행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다는 은행권의 항의를 금융당국이 수용하면서 제2금융권도 출연에 참여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채무 조정 대상이 되는 7년 이상 5000만원 이하 장기 연체 채권 16조3613억원 중 은행권 보유 비중은 1조864억원(6.6%)에 불과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이어진 소비부진, 내수침체로 인해 경기가 좀처럼 활력을 띄지 못하는 가운데, 지난해 갑작스럽게 터진 12·3 비상계엄 사태로 경기는 차갑게 식었다. 이번 채무 조정이 경기에 온기를 불어넣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은행권을 중심으로 한 금융권 전체가 출연에 참여하는 것은 사회적 책임 이행 측면에서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방식이다. 금융당국은 2차 추경안을 발표하면서 배드뱅크 설립 재원 출연과 관련해 금융권과의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됐음을 강조했지만, 은행권 관계자는 “사전 조율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사실 의견 수렴 수준”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통보’인 셈으로, 규제권을 가진 당국의 통보를 받은 은행권 입장에서는 참여 압박으로 느끼기 충분하다.

게다가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4일 비상경제점검 TF 1차 회의에서 “해외와 비교해 한국의 예대금리차가 너무 벌어져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취임 첫날 비상경제점검 TF 첫 회의에서 은행권이 과도하게 이익을 챙기고 있고, 이로 인해 금융소비자들이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화이트칼라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각종 행정 절차와 규제를 고려해서 사업을 기획해 이익을 내는 것인데, 유독 금융권에 대해서는 ‘편하게 앉아서 쉽게 돈을 번다’는 인식이 깔려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달 중 12조원 규모의 ‘민생회복 소비쿠폰’(이하 쿠폰) 지급을 앞두고, 정부의 카드사에 대한 압박도 이어지고 있다. 쿠폰 지급을 앞두고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카드사에 매출 규모에 따라 0.4~1.45% 수준인 가맹점 수수료율을 체크카드 수수료율 수준인 0.15~1.15%로 낮출 것을 요청했다. 쿠폰은 연매출 30억원 이하인 소상공인 매장에서 사용 가능한데, 쿠폰을 카드에 담아 사용하게 될 경우 발생하게 될 수수료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다.

하지만 카드사는 지속적인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로 본업인 신용판매 부문에서는 사실상 이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관련 인프라 구축 등 비용을 고려했을 때 역마진 우려가 있다며 난색을 표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인프라 구축 및 관리, 프로모션 등으로 카드사는 80억원 수준의 손실을 봤다. 또한 그동안은 본업에서의 수익성 악화를 카드론 등 대출에서 발생하는 이익으로 대체해왔지만, 이번 가계대출 관리 방안에서는 카드론이 규제에 포함돼 수익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제2금융권의 다른 업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저축은행업권과 상호금융업권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조정과 연체율 상승 등으로 재무 건전성 부담이 크게 확대됐다. 여기에 지난달 갑작스럽게 가계대출 관리 방안이 발표되면서 수익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금융사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대한 목소리가 높은 만큼 각사 자체적으로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다. 업권별로 사정이 다르지만, ‘상생’을 명목으로 하는 정부의 정책 방향에 금융사들이 동참하는 것도 이에 부응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데 각 업권의 특성이나 상황을 무시한 채 압박을 통한 이뤄낸 상생이 과연 상생일까. 게다가 특정 업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키우면서까지 말이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기와 팍팍해지는 삶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한 각종 지원을 위해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금융권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이런 식으로 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했다. 각 업권과 금융사가 잘 돼야 정부 주도의 이같은 정책에서 금융권에 대한 충분한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진짜 상생’을 위한 방법을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