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 뮤직] 변화는 무죄, 주다스 프리스트 ‘Turbo’
1980년대 중반 팝 메탈 분위기 편승
직장인은 늘 바쁘고 여유가 없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다면 한때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명반을 돌아보는 시간만큼 유익한 순간이 없을 것이다. 이에 한국금융경제신문은 1970~1990년대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명반을 재조명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한국금융경제신문=양지훈 기자 | 출중한 경력을 쌓은 뮤지션이 스타일을 갑자기 바꾸면 팬들의 반응은 대개 둘로 나뉜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수용하려는 팬이 있는가 하면, 거부감을 드러내는 팬도 있다. 영국 밴드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다스 프리스트는 영국 헤비메탈의 상징과도 같은 밴드였으며, 6집 ‘British Steel’과 8집 ‘Screaming for Vengeance’로 굵직한 명성을 쌓았다. 음반 판매량(미국 기준 각각 100만장, 200만장)이 다소 아쉬울 수 있지만, 두 앨범은 명반으로 칭송받았고, 주다스 프리스트는 1980년대 중반 브리티시 헤비메탈에서 영향력이 큰 밴드로 군림하고 있었다.
당시 주다스 프리스트의 명성을 고려했을 때 1986년 발매한 10집 ‘Turbo’는 이색적인 앨범이었다. 주다스 프리스트는 당시 유행하던 글램 메탈(glam metal) 혹은 팝 메탈(pop metal)의 분위기에 편승했다. 1983~1984년은 밴 헤일런(Van Halen)은 신디사이저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운 싱글 ‘Jump’로 대중음악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시기였다. 주다스 프리스트도 변화의 물결에 합류하는 용단을 내렸다.
첫 곡 ‘Turbo Lover’를 듣는 순간부터 무엇이 변했는지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청자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결정적인 원인은 밴 헤일런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신디사이저 사운드 도입이었다. 전자음이 곡의 흐름을 주도하자 당시 적잖은 헤비메탈 팬이 당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보컬리스트 롭 핼포드(Rob Halford)의 은유 섞인 가사도 이채롭다는 평가를 받았다. ‘Turbo Lover’의 가사는 인간의 성교를 오토바이 주행에 비유한 것이다.
하지만 밴드 구성원들이 기대한 만큼 폭발적인 판매량을 기록하진 못했다. ‘Turbo’는 1986년 6월 미국에서 골드 레코드(50만장) 인증을 받았고, 이듬해 7월 플래티넘 레코드(100만장 판매)로 등극했다. 빌보드 앨범 차트(Billboard 200)에서는 17위까지 올랐다.
새로운 시도에 팬들의 반응이 엇갈리는 건 뮤지션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과정이며, 누군가는 ‘Turbo’를 문제작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평론가가 ‘Turbo’를 긍정적으로 재평가하는 등 재조명하는 사례가 적잖이 등장했다.
시간이 약이었는지, 팬들의 반응도 점차 바뀌었다. 2020년대 주다스 프리스트 투어 세트리스트에서 ‘Turbo Lover’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칠순을 넘긴 노장 롭 핼포드가 ‘Turbo Lover’의 코러스를 부를 때 관객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I’m your turbo lover”를 함께 외친다. 음반 발매 초기와 달리 민감한 반응이 대부분 사라졌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주다스 프리스트의 스타일 선회는 밴 헤일런만큼 막강한 성공을 안겨주진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신디사이저 사운드에도 익숙해진 팬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들의 변화가 적어도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다고 본다. 게다가 밴드는 1990년 ‘Painkiller’로 헤비메탈 팬들을 다시 만족시키기도 했다. 40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서 1986년은 주다스 프리스트가 ‘잠시 이색적인 스타일을 시도해 본 시기’로 간주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