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석화산업 위기 현주소 여천NCC 사태…과거 조선업 실수 되풀이 않기를
한국금융경제신문=장용준 기자 | 석유화학산업은 플라스틱, 섬유, 고무, 페인트, 접착제, 화장품, 비료 등의 원료를 제공하는 주요산업이다. 이 가운데 여천NCC는 ‘산업의 쌀’이라고 비유되는 에틸렌을 만드는 주요기업으로 업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다. 그런데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각각 절반의 지분을 보유한 합작사로 오랫동안 호황을 누려온 이 기업이 최근 채무불이행 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양사의 행보가 극명하게 갈리면서 국내 석화산업의 위기를 체감하게 만들고 있다.
여천NCC의 주요 생산제품은 일상생활 외에도 자동차, 건설, 전자, 섬유 등 산업 전반에 막대한 비중을 차지한다. 과거 연간 조 단위 영업이익과 함께 연봉 1위 기업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호황을 누렸던 이 기업이 최근 불황의 늪에 빠져 든 가장 큰 이유는 공교롭게도 과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고객이었던 중국이 에틸렌 생산력을 확대하면서 대중국 수출 비중이 급감하고 있는 탓이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호황기에 미래를 위한 투자 명목으로 재원을 쌓아두는데, 호황이 영원하지 않고 불황의 사이클이 돌아오는 것을 알기에 대비하려는 목적이 크다. 하지만 여천NCC의 경우 단일기업이 아닌 합작사가 운영하는 곳이다 보니 재원을 쌓아두는 것보다 배당을 확대하는 것으로 주주환원 정책을 펼쳐왔다는 점이 불황기가 닥쳐온 현재 재무안정성이 흔들리는 직격탄을 맞은 요인이 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합작사인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은 긴급 자금 수혈의 필요성을 두고 대립과 반목이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 업계의 우려를 낳았다. DL케미칼은 중국발 공급과잉 문제가 계속되는 한 워크아웃을 선택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반면, 한화솔루션은 적자를 이어가더라도 장기적으로 국가기간산업을 지켜야 한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극명하게 대립각을 보였던 양사는 이번주 들어 DL케미칼이 극적으로 긴급자금 수혈을 결정하면서 한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에틸렌을 생산하는 여천NCC가 무너지게 되면 결국 국내 석유화학산업이 과거 불황기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던 조선업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앞서 2010년대 불황기에 접어들었던 국내 조선업계는 당시 고임금을 받던 기술인력을 구조조정으로 내몰면서 저임금 해외 노동자들로 그 공백을 메웠고 이는 단기적으로는 생존의 활로를 찾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다시금 활황기를 찾아가는 2020년대 들어 국내 조선사들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고급 기술자들의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조선업계에서 등떠밀려 생활 터전을 잃었던 기술자들은 이제 더 나은 환경의 반도체 공장 등에서 더 높은 임금을 받으며 정착한 상황이다.
한화솔루션이 기간산업을 지켜야 한다는 행보를 보이는 것도 그룹 계열사인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의 과거에서 교훈을 얻은 것으로 비쳐진다. 한화오션이 자리 잡은 경남 거제시는 과거 조선업 호황기에는 화려하고 살기 좋은 지역이었지만 뼈아픈 구조조정 이후 부활의 나래를 펼치기까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오랜 쇠퇴기를 맞은 바 있다. 국내 고급인력을 대체한 외국인노동자는 국내에서 번 돈을 자신의 조국으로 보내고, 또 다른 자리를 채우는 협력업체 직원들은 생활의 여유가 없어 돈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지역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진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이어지고 있는 석유화학산업의 불황이 길어지고, 기업논리로 구조조정 혹은 채무불이행의 불씨가 꺼지지 않는다면 여천 NCC뿐만 아니라 주요 대기업의 업체들과 석유화학단지가 연쇄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여천NCC 사태를 단순히 기업논리만으로 볼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고급인력과 기술을 놓친 조선업의 뼈아픈 과거를 되풀이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