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섭 대표, 연임 고배…다시 시작된 KT ‘CEO 잔혹사’
김영섭 KT 대표, 차기 대표이사 공모 지원 않기로…역대 수장 정권 교체 시기마다 연임 실패 소액 결제 사고가 결정적 영향…증거 은폐, 늑장 대응 등 보안 부실 비판 쏟아져 MS와의 사업도 흐지부지되나…2조4000억원짜리 투자 ‘물거품’
한국금융경제신문=최예헌 기자 | 김영섭 KT 대표가 연임 포기 의사를 이사회에 전달하면서 KT의 ‘CEO 잔혹사’가 재현되는 것이 아니냐는 업계의 의혹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해킹 사고의 여파를 이겨내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으로 떠오른 가운데, 그동안 김영섭 대표가 벌여온 대규모 사업들의 앞날도 불투명할 전망이다.
5일 KT에 따르면 김영섭 KT 대표이사가 차기 KT 대표이사 공개 모집에 불참한다. 지난 4일 이사회에서 김 대표가 이 같은 스스로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KT 이사후보추천위원회도 이날 차기 대표이사 선임 절차를 공식 개시했다.
김영섭 대표는 지난 2023년 8월 30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KT의 신임 대표이사로 공식 선임된 이후 약 2년 2개월 만에 연임 포기 의사를 전달하게 됐다. 김 대표는 LG유플러스 최고재무책임자, LG CNS의 대표이사 자리를 지낸 바 있다.
이로써 KT는 황창규 전 회장을 제외하고는 정권 교체 시기마다 모두 수장이 연임에 실패하며, ‘CEO 잔혹사’가 반복되는 위기를 맞았다. KT가 ‘오너 경영’ 체제로 운영하지 않은 것의 취약점이 다시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다.
김 대표가 연임을 포기하게 된 데는 지난 9월 발생한 KT 불법 소형기지국(펨토셀) 해킹 사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김 대표는 지난달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경영 전반의 총체적 책임을 지는 CEO로서 이번 자사 사고에 따른 개인정보 유출 및 소액결제 피해 발생에 대한 합당한 책임을 지겠다”고 계속해서 말한 바 있다.
KT는 지난 9월 9일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침해 사고 신고 조치를 완료했다. 이틀 뒤인 11일 소액결제 피해 규모가 1억7000만원이라고 밝혔으나,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18일 추가 피해 사례를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누적 피해 금액은 2억4000만원으로 늘었으며 피해 고객 수도 278명에서 362명으로 집계됐다.
또한 KT는 증거 은폐 의혹도 받고 있다. 해킹과 관련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폐기하지 않은 서버를 이미 폐기했다고 정부에 보고하고, 보고 이후에도 일부 서버를 폐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KISA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KT가 원격상담시스템 구형 서버 폐기를 지난 8월 21일 이후로 계획했으나, 지난 7월 19일 KISA가 해킹 의혹을 통보한 뒤 지난 8월 1일에 해당 서버를 폐기한 것으로 확인했다.
‘늑장 대응’도 문제가 됐다. 해킹 사태가 파악된 시기는 지난 8월 중순이었으며 경찰이 소액결제 피해 관련 사실을 KT에 통보한 것도 지난 9월 1일자였으나, KT는 나흘 후인 9월 5일이 돼서야 비정상 소액결제를 원천 차단했다. 서버 해킹 사실을 파악했음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신고를 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이후 내놓은 고객 보상안도 문제가 됐다.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고객에게만 유심을 교체해 주겠다고 밝힌 것이다. SKT가 전 고객을 대상으로 유심을 무상 교체해주겠다고 밝힌 것과 비교되는 측면이 있었다.
다만 KT는 5일부터 교체를 희망하는 전 고객을 대상으로 유심(USIM) 무상 교체를 시행한다고 지난 4일 밝혔다. 피해 발생 지역(광명·금천 등)을 우선 대상으로 교체를 진행하고 이후 수도권과 전국으로 단계적 확대 예정이다. KT망 이용 알뜰폰 고객에게도 동일한 유심 무상 교체가 적용된다.
일각에서는 김 대표의 연임 포기가 가시화되며 진행해왔던 사업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 대표 체제 하에 단기간 동안 실적을 위해 무리한 사업을 벌여왔는데 김 대표가 연임을 하지 않게 됐으니 관계자들이 ‘끈 떨어진 갓’ 신세가 된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특히 김 대표는 지난해 10월 마이크로소프트(MS)와 함께 사업을 추진하기로 하며 양사가 약 2조4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투자했으나, 연임을 포기하면서 해당 사업이 흐지부지될 위기에 처했다. 당시 KT는 5년간 4조6000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내겠다는 포부를 밝혔으나 사업의 실질적 성과는 미미했다.
이에 KT 새노조는 성명문을 통해 “불과 3년도 되지 않은 김영섭 대표의 임기 동안 KT는 대규모 구조조정, 잇따른 직원 사망 사건, 대규모 해킹 사태, 계열사 헐값 매각, MS와의 불공정 계약 논란, 검찰·정치권 낙하산 인사 등 숱한 논란으로 얼룩졌다”고 비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