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준석의 판례 돋보기] 약관 설명 안 했어도…‘사고원인 기망’은 보험사기
기망행위, 권리행사 범위 넘어선다면 ‘사기 성립’ 항소심 무죄 뒤집혀…제주지법 사건 환송
한국금융경제신문=옥준석 기자 | 대법원이 보험사가 설명의무를 다하지 않았더라도, 사고 원인을 속여 보험금 지급을 받았다면 보험사기가 성립한다는 판결을 냈다.
7일 대법원 제3부에 따르면 노경필 주심 대법관 등은 2024도11951 판결을 통해 피고인 A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을 깨고 2심 제주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손해보험사 지사장 A는 고객 E의 자녀 F가 전동킥보드를 구입해 운행 중 구미시의 도로에서 넘어져 폐쇄성 요골 머리의 골절상 등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사건에 대해 사고내용을 조작해 보험금을 지급받았다. E는 당시 F에게 H보험과 I보험을 가입시킨 상태였다.
해당 상품은 전동킥보드를 운행하다가 상해를 입은 사고에 대해 보험금 지급이 제한되는 상품이었다. 피고인 A는 F의 회사에서 보험금 지급이 제한되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사고 내용을 조작해 보험금을 지급받기로 했다.
A는 상해 원인을 ‘넘어져서 다침’으로 기재하고, 응급초진차트도 누락하는 방법으로 보험금을 청구했다. H보험에서 ▲상해입원의료비 76만66381원 ▲비급여 주사료 38만4464원을 수령하고 I보험에서 ▲수술비 등 159만원을 받으며 합계 274만845원을 교부받았다.
이에 대해 1심 재판에서는 200만원의 벌금을 선고했지만, 항소심은 ‘이륜자동차 운전 중 상해 불보장 특별약관’(특별약관)이 이륜차 운전 중 발생 사고에 대해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정했을 뿐, 회사가 이에 대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설명할 의무가 있는데 이를 설명했다고 볼 증거가 없는 점과 이 같은 이유로 기망했다고 보기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뒤집었다. 기망행위를 수단으로한 권리행사는 그 권리행사에 속하는 행위, 수단에 속하는 기망행위를 전체적으로 관찰해야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통념상 권리행사의 수단으로서 용인할 수 없는 정도라면 사기죄를 구성한다고 판단한다.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은 ‘보험사기행위’에 대해 보험사고의 발생, 원인 또는 내용에 관하여 보험자를 기망해 보험금을 청구하는 행위로 규정히고 있다. 또한 이 같은 행위로 보험금을 취득하게 한 자에 대해 보험사기죄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위 사실관계를 사기죄 법리에 비춰본다면 피고인 A는 고객 E·보험설계사 D와 함께 보험사고 원인을 허위로 기재하고, 응급진료차트를 일부러 누락시켰다. 이 후 보험금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보험회사를 기망해 보험금을 받았다.
보험의 경우 사기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사고 발생·원인·내용 등에 대해 회사를 기망하고 보험금을 청구한 시점부터 실행에 착수했디고 판단한다. 다만 이때는 아직 재산상 이득이 없어 미수범에 해당한다.
이후 이 기망행위로 인해 실제 보험금을 지급하게 되면 사기죄가 기수에 이르게 된다. 공소시효 기산은 사기죄 기수로 범죄가 완성된 시점부터 기산한다.
따라서 대법원은 이 사건을 보험사기 기수로 판단했다. 원심과 달리 피고인의 행위를 기망행위로 봤다. 피고인의 행위가 사회통념상 권리행사 수단으로서 용인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것이 이유였다.
이어 대법원은 만약 보험회사가 전동킥보드 운전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설명해야 하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를 가진다고 해도 달리 볼 것이 아니라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피고인의 행위가 기망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해 이 사건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했다”며 “원심 판단에는 사기죄의 기망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채 논리와 경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 한계를 벗어나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보험금 청구 과정에서 사실을 은폐·누락해 보험회사를 속인 점을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는 기망행위’로 본 것이 핵심이다”며 “권리행사의 한계를 넘은 적극적 기망이라는 점으로 판시한게 기망행위의 범위를 명확히 한 사례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