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경제신문=서효림 기자 | 대한항공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재신임 안에 반기를 들었다. 주주 권익 침해 행위에 대한 감시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을 받는 조 회장은 2년 연속 50% 이상 오른 연봉을 수령해 소액주주들의 원성이 커지고 있다.
대한항공·한진칼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조 회장은 지난해 대한항공에서 39억1715만원, 한진칼에서 42억3988만원을 받아 총 보수는 81억 5703만원이다. 전년 대비 대한항공 15억2929만원(64%), 한진칼 14억4358만원(51.6%) 늘어난 보수를 수령했다. 대한항공은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해 2022년까지 보수 일부를 반납하고 일반 직원들에게 지급된 경영성과급을 반납했으나 지난해부터 정상적인 보수를 지급 중”이라며 “지난해 보수 증가는 2022년 장기간 동결됐던 임원 보수의 조정과 지난해 경영성과 지급에 따른 단발성 증가”라고 설명했다.
한진칼의 경우에도 2014년 이후 동결했던 임원 보수의 조정(2022년 4월부)이 이뤄지는 등 일시적으로 연봉이 증가했다. 주요 자회사의 경영 실적이 반영된 경영 성과급도 지주사 설립 이후 최초로 지급됐다.
대한항공과 한진칼의 설명에도 조원태 회장의 연봉 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국내 항공사가 코로나 팬더믹의 여파로 직원 연봉을 줄이는 중에서도 조 회장의 연봉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상승했다. 지난 2020년 국내 국적 항공사가 많게는 최대 26.1%까지 직원 급여를 줄이는 상황에서 대한항공도 직원 급여의 15.6%를 삭감했지만, 조 회장의 급여는 2019년 13억 7835만 원에서 2020년 17억 3241만 원으로 오히려 25.6% 증가했다. 예상치 못한 항공업계의 긴 위기에 노사가 합심해 고통 분담에 나서 연봉 감축에 나서며 위기 극복에 나섰지만 조 회장의 연봉은 위기에서 벗어나 있다.
오는 21일 열리는 정기 주총에서 대한항공은 조원태 회장의 재선임을 비롯해 표인수‧허윤 사외이사의 선임, 홍영표 사외이사의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과 이사 보수한도 승인(90억원) 등을 안건으로 다룬다. 대한항공 주식 7.61%(작년 말 기준)를 보유한 2대 주주 국민연금은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을 반대하기로 했다.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에 대해서도 ‘보수금액이 경영성과에 비춰 과다’하다며 반대 입장이다.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 회장의 재선임 안건은 통과가 유력하다. 이사 선임 요건이 대폭 완화된 것도 한몫을 차지한다. 대한항공은 2019년 주총에서 고(故)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이 2.6% 지분이 부족해 사내이사에서 물러난 이후 이사 선임 요건을 대폭 완화했다. 당시 ‘주총에 참석한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됐던 정관은 2020년 ‘주총에 참석한 주주의 2분의 1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로 변경했다. 정관 개정 이후 대한항공의 주총안건 통과률은 90%에 달한다.
대한항공 소액주주들은 코로나 종식 이후 매출이 늘었지만, 주가가 떨어지는 상황을 ‘오너리스크’ 때문이라며 울분을 토한다. 조원태 회장은 2020년 11월 한진칼에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산업은행으로부터 8000억원을 조달하고 우호지분을 확보해 지배권 방어했다.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지원하기 위해 한진칼에 투자했다. 조 회장은 우호 지분의 확보를 위해 아시아나와의 합병이 절실했다.
대한항공은 영국·중국 등 각국 경쟁당국 심사에서 상당수의 슬롯(항공사에 배정되는 항공기 출발·도착시각)을 반납한 데 이어 아시아나의 화물 사업부도 매물로 내놓았다. 알리, 테무 같은 해외 직구 화물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에 2023년 4분기 기준으로 전체 매출의 27%를 차지하는 화물 사업부까지 포기하자 대한항공 소액주주들의 불만이 커진 상황에서 조 회장의 82억원 연봉까지 공개되자 반발이 거세진 모양새다. “무엇을 포기하든 기업 결합을 성사시킬 것”이라는 조 회장의 말에서 ‘무엇’은 결국 소액주주의 이익인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