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경제신문=장용준 기자 | 올들어 재건축 시장 최대어로 꼽히는 압구정2구역 시공사를 가리는 수주전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이번 수주전의 성패를 가늠할 가장 중요한 변수 중 하나로 꼽히는 건 시공사의 ‘사업비 조달 조건’이다.
금융기관들이 어떤 조건을 제시하는가, 그 자체가 시공사의 재무역량과 신뢰 수준을 증명하는 가장 정확한 신호이기에 조합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압구정2구역 수주전에 일찌감치 참전 의사를 밝혀왔던 현대건설은 최근 주거래은행인 A은행과 압구정2구역 사업비 조달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력한 경쟁사인 삼성물산은 이미 A은행을 포함한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과 포괄적 사업비 MOU를 선제적으로 체결해 놓은 상태다.
표면적으로 보면 두 회사 모두 A은행과 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실제 적용 조건에서는 중요한 차이가 발생했던 전례가 있다. 양사가 모두 수주전에 참여하고, A은행이 참여했던 한남4구역 사업비 조달 협상 사례다. 당시 A은행은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양사 모두와 업무협약을 체결했지만 실제 조달금액과 적용 금리 조건은 삼성물산에만 제시했다.
A은행은 현대건설의 주거래은행임에도 불구하고 삼성물산과 동일한 수준의 조건을 현대건설에게는 제시하지 못했다. 결국 성패를 가른 건 두 시공사의 재무 역량 차이다. 금융기관은 결국 ‘숫자’를 보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2024년 4분기 기준,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의 재무지표는 명확히 갈린다.
삼성물산은 신용등급이 우량채 수준인 AA+에 이르고, 부채비율도 62.9%로 안정적이었다. 우발채무 규모 또한 업계 최저 수준인 2조원대에 자산규모도 62조4000억원에 이르렀다.
반면 현대건설은 신용등급이 우량채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AA-에 이르고, 부채비율도 179.3%로 높은 편이다. 우발채무 규모도 약 12조6000원대로 업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자산규모는 약 27조원으로 삼성물산보다는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다.
금융권은 신용등급·부채비율·우발채무·유동성 구조 등 정량적 재무지표를 근거로 금리를 산정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기관은 재무제표상의 숫자를 매우 중시한다”며 “신용등급 AA- 부채비율 180%에 가까운 회사와 신용등급 AA+ 부채비율 60%대 회사가 동일한 조건을 받을 수는 없다. 그 차이는 금리와 조달한도에 명확히 반영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번 압구정2구역에서도 금융권이 양사에 어떤 수준의 조건을 제시할지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이미 삼성물산은 5대 시중은행과의 포괄적 MOU 체결로 자금조달의 폭과 유연성을 확보한 반면, 현대건설은 주거래은행 중심의 협약에 그치고 있다는 점을 염두해 둘 필요가 있다.
정비업계에서는 한남4구역 사례가 이번에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시공사의 재무 건전성은 단기간에 뒤집을 수 없는 구조적 격차이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은 명분보다 숫자에 충실하다. 주거래은행 협약이야 보여주기 위한 형식일 뿐, 실제 금리와 조달한도는 결국 시공사의 신용등급과 재무구조라는 냉혹한 수치가 결정한다.
한남4구역에서 이미 A은행은 현대건설이 주거래은행임에도 불구하고 삼성물산과 동일한 조건을 제시하지 못했다. 당시 확인된 시공사 간 재무격차는 이번 압구정2구역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금융시장은 한 번 확인한 리스크를 쉽게 잊지 않는다. 이번에도 숫자가 답을 말할 것이다. 결국, 이번에도 금융기관은 냉정하게 평가할 것이다. 누가 진짜 금융시장에서 신뢰를 얻는 기업인지. 그리고 그 결과는 조합원들의 금융비용 차이로 고스란히 현실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