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Hereditary, 2017). 사진=네이버 영화
유전(Hereditary, 2017). 사진=네이버 영화

사람의 취향은 제각각이고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고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시작된 취미생활은 곧 개성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그리고 영화야말로 어릴 적에 본 작품이 모여 평생토록 기억된다. 그리고 어떤 영화를 누구와 함께한 것이냐에 따라 기억은 추억이 된다.

한국금융경제신문=장용준 기자 | 로즈메리의 아기(Rosemary's Baby, 1968) 이후 정상적으로 보였던 주변인들이 모두 자신의 아기를 노리는 악마교 신봉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엄마의 고군분투를 그린 오컬트 호러는 파격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소재에서 클리셰로 굳어져 왔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유전]은 타이틀롤이 올라가는 순간부터 공식에 충실한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집중해서 볼 수 있었던 불친절하면서도 전통적인 오컬트 호러이기에 영화 마니아에게는 떡밥 수거에 적합한 작품인지도 모른다.

미니어처 조형사인 애니(토니 콜렛)는 정신과 의사인 남편 스티브 그레이엄(가브리엘 번), 큰아들 피터(알렉스 울프), 막내딸 찰리(밀리 샤피로)와 함께 교외의 저택에서 살고 있다. 오프닝에서 자신의 집을 미니어처로 제작하고 있는 모습이 어딘가 오싹하게 느껴지는 건 그녀와 가족들이 어딘가 피곤하고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애니의 캐릭터에 대한 착각을 유발하는 맥거핀의 느낌을 풍긴다.

애니는 가족과 함께 조금은 소원했던 자신의 어머니 앨렌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애니가 장례식장에서 조사를 낭독하고 있을 때 카메라의 시선은 조문객들을 낯설어 하면서 어머니의 삶을 이해할 수 없었던 애니의 무미건조한 모습과 무표정한 얼굴로 어딘가 이질적인 그들의 모습을 그리는 찰리의 모습을 교차시킨다.

이 작품에서 찰리의 모습은 시종일관 우울하고 불안정하다. 어렸을 적 외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탓인지 엄마인 애니와의 관계도 서먹하고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집단과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애니 역시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기에 가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데 서투른 것인가 하는 짐작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발견한 유언장을 발견하고 읽는 순간 관객 역시 그녀의 감정의 기원을 깨닫게 된다.

이후 이 작품의 제목이 왜 [유전]인지 러닝타임 내내 체험하게 된다. 애니가 어머니를 여읜 슬픔과 그녀에게서 받았던 유년 시절 마음의 상처가 복잡하게 교차하는 가운데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자리에 참석해 자신의 오싹한 가족사에 대해 털어놓는 전개는 애니 모녀의 애증이 극에 달했던 어느 순간을 떠올려 보게 한다.

희생과 보상이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복선 때문일까. 누구를 위한 누구의 희생이었는지조차 불확실한 가운데 애니와 가족들은 상상할 수 없는 크기의 불행을 향해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시작한다.

찰리가 학교나 집에서 저지르는 기행도 오빠인 피터가 마리화나에 의존하는 모습도 단순한 중산층 가정의 일탈이 아니라는 것을 관객이 인지하는 순간부터 이 작품은 급속도로 오컬트물의 특성을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가장이자 남편인 스티브는 홀로 외딴섬에 갇힌 느낌을 풍긴다. 여느 작품들 속 가부장적인 모습도 폭력적이거나 오만한 모습도 아닌 다정다감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가장이지만 자신의 상식과 노력의 범위를 벗어난 불행에 맨몸으로 부딪히고 희생당하는 존재의 슬픔이 바로 스티븐의 캐릭터다.

장남 피터는 모범생은 아닐지언정 가족에 대한 사랑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평범한 10대 청소년임에도 불구하고 ‘아들’이라는 이유로 희생양이 되어가는 존재로 그려진다. 동생 찰리의 불행과 어린 시절의 경험이 트라우마로 그의 발목을 잡는 가운데 태생적으로 어머니인 애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존재였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는 중후반부의 전개 속에서 정해진 듯한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뜻하지 않은 찰리의 부재 이후 이 작품의 주제를 확고하게 굳힌 건 군데군데 얼굴을 비추면서 작품을 이끈 조앤(앤 도드)의 존재감이다. 세상 그 누구보다 선한 얼굴로 애니 가족의 불행을 위로하던 그녀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기까지의 연기는 사실, 이런 오컬트물을 즐기는 마니아라면 사실 짐작은 가는 캐릭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니를 위로하는 말 한 마디. 손짓 하나에 무미건조하기만 한 애니 가족의 캐릭터와 대조되는 생동감이 시선을 끈다.

작품은 애니의 가족을 둘러싼 갈등과 비밀을 다루는 스릴러의 성격을 보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에서 악마교 신봉자와 이를 막으려는 연약한 여인의 사투를 그리는 오컬트로 변화한다. 딸의 이름이 왜 굳이 ‘찰리’여야 했는지, 왜 ‘피터’가 환영받지 못한 장남이었는지, 앨렌이 왜 찰리에게 지극정성이었는지 관객이 깨달아가다 보면 애니가 왜 가족에게 살갑지 못한 것인지 이해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솔로몬의 72악마 중 서열 9위인 파이몬이 인간의 몸을 빌려 현세에 나타난다는 설정은 태고부터 이어져 온 인간과 악마의 대결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감독은 파이몬이 머리에 관을 쓰고 왕처럼 낙타를 타고서 나타난다는 그 설정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았다면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경배하는 동방박사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엔딩이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나도 많은 해석과 리뷰가 난무하는 [유전]이기에 자세한 언급들을 줄여나갔음에도 이야깃거리는 넘쳐난다. 익숙하지만 낯설게 다가오는 작품의 전개 방식은 가족을 지키기 위한 한 여인의 절절한 모성애를 부각시키기보다 오히려 정신병에 걸린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켰던 애니라는 한 사람의 트라우마와 콤플렉스를 캐릭터에 녹여내면서 관객과 캐릭터의 거리를 유지했던 제작진의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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