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경제신문=양지훈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코스피 5000 시대’를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지난 5~6월 주식시장이 폭발적인 상승세를 기록했지만, 7월 말부터 기세가 한풀 꺾였다. 당·정의 엇박자 노선과 경제부총리의 발언이 투자자들의 불신을 키운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21일 국회에 따르면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코스피 지수가 3200p 수준인데,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얼마인지 아느냐”고 묻자 구 부총리는 2~3초 머뭇거리다 “10 정도 되지 않느냐”고 답했다.
PBR은 주가가 1주당 순자산 대비 몇 배로 거래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이며, 1 미만이면 주가가 장부가치보다 낮다는 의미다. 구 부총리의 말처럼 코스피 PBR이 10배라면 3000대가 아닌 3만이 돼야 한다.
일각에서는 “구 부총리가 PBR과 주가수익비율(PER)을 헷갈려 잘못 말한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최근 코스피 PER은 14배 수준이므로 10이라는 숫자와는 거리가 있다.
관대하게 바라보면, ‘코스피 PBR 10’ 발언까지는 경제부총리의 ‘말실수’로 간주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주식 저평가 현상)’를 바라보는 구 부총리의 구시대적인 시각에 투자자들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구 부총리는 “남북한의 관계도 우리나라 주식시장 PBR을 낮추는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소영 의원은 즉시 “남북 관계가 (PBR 하락 리스크) 요인인 건 옛날얘기이며, 우리나라보다 국가 안보가 더 불안한 대만조차도 자본시장이 훨씬 더 활성화됐다”고 반박했다.
민심은 냉정하다. 구 부총리의 발언이 알려지자 개인투자자들은 “명색이 경제부총리인데, 우리나라 주식시장을 너무 모른다. 참담하다”, “이런 사람이 수장이라면 코스피 5000은 희망이 없다”, “기득권은 부동산에서 주식시장으로의 자금 이동을 원치 않는 것 같다”며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투자자들의 실망감은 새 정부 주요 인사의 한심한 발언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멈추지 않는다. 양도소득세 부과의 기준이 되는 ‘대주주 요건’을 두고 여당과 정부의 견해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아 피로감만 가중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여론을 의식했는지 정책위의장이 진성준 의원에서 한정애 의원으로 바뀐 뒤 ‘대주주 요건 50억원 유지’ 의견을 정부에 전달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대주주 기준 10억원 강화’ 기조에서 물러나지 않고 여당과 대치 구도를 이어가는 중이다.
정책 합의가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자 주식시장에서는 실망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자본시장이 부동산에 극도로 편중된 ‘기형적 구조’라는 사실을 모르는 대한민국 성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통령도 이를 개선 과제로 간주하고 주가 부양에 힘쓰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다만, 현재 당·정의 불협화음이나 신임 경제부총리의 주식시장 무관심 등을 바라보면 ‘코스피 5000’이라는 공약은 허상에 가까워 보인다.
일각에서는 “부동산 중심의 금융시장은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며 비판을 넘어 비관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주식시장 활성화를 목표로 하면서도 정부가 확실한 신호를 보내지 않고 있으니 이런 한탄이 나오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대통령실과 기재부, 여당이 하루빨리 합의하고 투자자 친화적 환경을 조성해 공약 이행의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