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Dangerous’ 앨범 커버 전면. 사진=양지훈 기자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Dangerous’ 앨범 커버 전면. 사진=양지훈 기자

직장인은 늘 바쁘고 여유가 없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다면 한때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명반을 돌아보는 시간만큼 유익한 순간이 없을 것이다. 이에 한국금융경제신문은 1970~1990년대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명반을 재조명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한국금융경제신문=양지훈 기자 |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은 1980년대 이미 팝 음악계 최정상에 등극했다. 성인이 된 후 발매한 3장의 앨범(▲Off the Wall ▲Thriller ▲Bad)이 모두 승승장구했고, 쟁쟁한 경쟁자들 사이에서도 최고로 군림했다.

하지만 1990년대에도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을 택했다. 오랜 기간 협업했던 프로듀서 퀸시 존스(Quincy Jones)와 작별하며 새로운 프로듀서를 물색했다. 1990년, 마이클 잭슨이 선택한 프로듀서는 ‘뉴 잭 스윙(new jack swing)의 아버지’로 불리는 테디 라일리(Teddy Riley)였다.

테디 라일리는 알앤비(R&B) 그룹 가이(Guy)의 주축이었다. 당시 가이는 1988년 셀프 타이틀(‘Guy’) 앨범으로 플래티넘(미국 내 최종 200만장 판매)을 기록해 상승세를 타던 그룹이었다. 아울러, 테디 라일리는 알앤비 스타일에 파워풀한 힙합 음악의 요소를 섞은 ‘뉴 잭 스윙’ 장르의 개척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이를 눈여겨본 마이클 잭슨의 주변인들은 테디 라일리를 마이클 잭슨에게 추천했고, 마이클 잭슨은 테디 라일리를 ‘Dangerous’ 앨범의 프로듀서로 고용했다.

마이클 잭슨은 뉴 잭 스윙 작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Dangerous’에 수록된 14곡 가운데 마이클 잭슨과 테디 라일리가 협업한 곡은 7곡에 이른다. 강렬한 드럼 비트가 분위기를 주도하는 곡은 대부분 뉴 잭 스윙 트랙이라고 간주하면 된다. 전례 없는 랩(rap) 게스트 초대도 볼 수 있었다. 헤비 디(Heavy D)와 렉스 앤 이펙트(Wreckx-n-Effect)는 각각 ‘Jam’과 ‘She Drives Me Wild’에서 랩 세션을 담당했다.

‘Remember the Time’은 훗날 테디 라일리가 자신의 경력에 길이 남을 곡이라며 만족을 표했다. ‘Black or White’에 이어 앨범에서 2번째 싱글로 낙점돼 빌보드 싱글 차트(US Billboard Hot 100) 3위까지 올랐다. 이 곡을 포함해 마이클 잭슨 특유의 ‘물량 공세’가 이어졌는데, 1991년 11월부터 1993년 12월까지 총 9곡이 싱글 발매됐다.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Dangerous’ 앨범 커버 후면. 사진=양지훈 기자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Dangerous’ 앨범 커버 후면. 사진=양지훈 기자

테디 라일리와 협업한 곡을 제외한 나머지도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반전 메시지로 건전 팝송을 지향하는 ‘Heal the World’, 경쾌한 팝-록(pop rock) 넘버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Black or White’, 영화 ‘프리 윌리’의 OST로 쓰인 ‘Will You Be There’ 등은 1990년대 삼척동자도 알만한 노래였다.

마이클 잭슨은 퀸시 존스의 곁을 떠나 새로운 프로듀서를 고용하는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980년대와 마찬가지로 그는 1990년대 초에도 대중음악계의 유행을 선도했고, 수많은 팝 스타 사이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미국 내 800만장 판매라는 기록은 ‘Dangerous’가 뉴 잭 스윙이라는 장르를 대표하는 앨범으로 입지를 굳혔음을 증명한다. 알앤비와 힙합의 이상적인 조합을 논할 때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작품이 있다면 ‘Dangerous’는 유력한 후보가 될 것이다.

다만, 황제(皇帝)도 언제나 정상에 머무를 수는 없었다. 이 앨범을 기점으로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고, 영향력도 조금씩 약해졌다. 9집 ‘HIStory: Past, Present and Future, Book I’과 10집 ‘Invincible’은 미국에서 각각 400만장, 200만장 판매됐다. 다른 뮤지션이라면 ‘커리어 하이’가 될 수 있는 기록이지만, ‘팝의 황제’라는 명성을 고려하면 기대 이하의 판매량이었다. 즉, ‘Dangerous’ 시절은 마이클 잭슨이 폭발적인 앨범 판매량을 기반으로 대중음악계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마지막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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