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도착한 첫날 료칸에 가기 전 유후인의 ‘킨린호수’와 인근 마을을 둘러봤다. 사진=김성훈 기자
일본에 도착한 첫날 료칸에 가기 전 유후인의 ‘킨린호수’와 인근 마을을 둘러봤다. 사진=김성훈 기자

한국금융경제신문=김성훈 기자 | 최근 인생 처음으로 해외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국내여행은 많이 다녀왔지만 다 함께 해외로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그럴 돈이 없었고, 대학에 가서는 친구들과 여행하기 바빴다. 해외로 가족여행이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즈음엔 잦은 해외 출장에 지치신 아버지께서 비행기 보이콧을 선언하셨다. 어쩌면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에 한 번쯤 다녀왔을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그런 연유로 이번이 공식적인 ‘첫’ 해외 가족여행이었다.

절대 비행기는 타지 않겠다던 아버지께서 마음을 바꾼 이유가 나이가 드셔서인지, 손녀가 태어나서인지, 혹은 둘 다인지는 모른다. 다만 흔쾌히 해외여행에 동의하신 후에도 ‘국적기’를 타야한다는 부분은 양보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발발한 저비용항공사(LCC)도 괜찮다는 자식과 꼭 국적기 ‘대한항공’을 타야 한다는 아버지의 첨예한 대립은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한항공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LCC 반대 이유가 지난해 12월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와 올해 상반기 보도됐던 LCC 항공기 ‘기체 결함’ 등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비록 거주지역의 차이로 가족들과 따로 출발한 아들이 LCC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일말의 걱정도 표하지 않으셨지만, 표현하지 않으셨을 뿐 많이 걱정하셨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추운 계절이 아니라 물안개는 만날 수 없었다. 사진=김성훈 기자
추운 계절이 아니라 물안개는 만날 수 없었다. 사진=김성훈 기자

목적지는 비행기 탑승 시간이 가장 짧은 곳 중 하나이자 두 살배기와 부모님을 모시고 가기 좋다는 일본 후쿠오카였다. 출국 전부터 우천 소식이 있던 후쿠오카는 우려대로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심지어 유후인으로 향하는 길에는 폭우가 쏟아져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다행히 첫 번째 목적지인 ‘킨린’호수에 도착할 즈음엔 비가 그쳐 있었다.

온천물이 섞여 수온이 높은 킨린 호수는 추운 계절이면 수온과 공기의 온도 차로 인해 물안개가 떠 신비로운 경치를 자아낸다고 알려져 있다. 하늘을 가려준 구름들로 간신히 더위가 한발 물러선 날씨에 방문한 탓에 안개 낀 신비로운 광경은 볼 수 없었다. 고인 물이 국적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지는 않았지만 호수 한켠에 자리잡은 호텔로 운영되던 건물과 도리이가 이국임을 증명했다.

킨린호수 인근 마을에서 찍은 주차장 앞 자판기. 사진=김성훈 기자
킨린호수 인근 마을에서 찍은 주차장 앞 자판기. 사진=김성훈 기자

킨린호수 인근에는 작은 마을이 형성돼 있었다. 아마 유후인 역에서 킨린호수로 오는 ‘유노츠보거리’의 끝자락에 자리했을 마을을 가볍게 둘러봤다. 마을 군데군데 얼렁뚱땅 자리잡은 자판기가 자연스러운 일본 특유의 분위기가 꽤 기꺼웠다.

‘플로랄 빌리지’에는 캐릭터 상점과 고양이·강아지 등 테마 상점이 많이 보인다. 사진=김성훈 기자
‘플로랄 빌리지’에는 캐릭터 상점과 고양이·강아지 등 테마 상점이 많이 보인다. 사진=김성훈 기자

첫날은 료칸에서 묵기로 해 킨린호수만 둘러보고 바로 숙소로 들어왔다. 당연하게도 료칸에 왔으니 온천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이튿날 오전까지 가이세키와 온천을 즐긴 우리는 ‘플로랄 빌리지’로 향했다. 일본의 아기자기함과 유럽풍 감성이 만난 플로랄 빌리지에는 아이들을 위한 토끼, 기니피그 등 소동물 먹이주기 체험과 상점들이 줄지어 있는 곳이다. 높이가 낮은 아기자기한 건물들과 캐릭터 상점들을 돌아다니다 지쳐 잠든 조카와 함께 하카타로 돌아갔다.

하카타로 돌아온 날 저녁과 마지막날은 캐널시티와 텐진거리를 거닐었다. 누나가 계획한 관광지가 몇 군데 더 있었지만 우리가 조카의 체력을 간과한 탓에 눈물을 머금고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우스갯소리로 ‘십계명’이라는 게 존재하는 말로만 듣던 ‘부모님'과의 여행과는 달리 한 식당에서 김치를 사먹어야 했던 일을 제외하고 부모님은 단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여행을 즐기셨다. 그렇게 2박 3일의 짧은 첫 해외 가족여행이 마무리됐다.

개인적으로는 무척이나 즐거운 여행이었지만 과연 다시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조카가 유독 삼촌에게 다가오길 꺼려한 탓에 두살배기가 심통이 날 때마다 달래는 역할은 부모님과 누나네가 도맡았기 때문이다. 비록 길안내와 주문을 거의 혼자 하긴 했지만, 유후인으로의 왕복 운전과 일체의 여행 계획을 매형과 누나가 전담한 만큼 육아를 더한 피로도가 더하면 더했지 부족하진 않을 테니까. 그 탓에 가족들은 모두 녹초가 됐지만 그래도 싸우지 않고 돌아왔다면 성공한 여행 아닐까.

다함께 바쁜 도시를 벗어나 고즈넉한 마을을 산책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진=김성훈 기자
다함께 바쁜 도시를 벗어나 고즈넉한 마을을 산책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진=김성훈 기자

여행은 알 수 없는 힘이 있다. 익숙한 곳을 벗어나 낯선 곳에 함께 있기 때문일까, 장소와 음식만 조금 바뀌었을 뿐 익숙한 식사, 익숙한 술자리였음에도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더 가까워질 곳 없다고 생각했던 가족들과 한층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다. 낯선 곳의 힘은 그렇게 강하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의 고단한 부분이 있을지언정 즐거웠을 시간을 앞으로도 켜켜이 쌓여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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