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경제신문=도시은 기자 | 상장사의 자사주 공시 의무가 대폭 강화된다. 그간 자사주 처분 과정에서 중요사항을 누락하거나 형식적 기재가 잇따르면서 제재의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금융당국은 개선을 통해 기업의 자사주 운용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 자사주 공시 의무 확대…위반 시 강력 제재
지난 25일 금융당국은 자본시장법 시행령과 증권 발행공시규정, 자본시장조사 업무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9월 26일부터 11월 5일까지 의견 수렴을 거쳐 규제개혁위원회와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올해 4분기 중 시행될 예정이다.
이번 개정안은 자사주 보유·처리 공시 의무를 강화하고, 공시 위반 시 제재를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상장법인이 자기주식을 발행주식총수의 1% 이상 보유하는 경우 자기주식 보유현황·처리계획 등을 연 2회 공시하도록 강화하는 내용이 핵심으로 담겼다. 공시 대상을 기존 5%에서 1%로 크게 낮춘 것은 물론 공시 횟수도 1회에서 2회로 늘렸다.
또한 상장법인이 직전에 공시한 자기주식 처리계획과 지난 6개월간 실제 이행현황을 비교해 사업보고서와 반기보고서에 공시해야 한다. 이행 내역과 계획이 달라 투자자의 예측 가능성을 저해하지 않도록 하려는 취지다.
공시 위반에 대한 제재도 한층 강화된다. 상장법인이 자기주식 공시 위반시 임원해임권고, 증권발행제한, 과징금, 형벌 등 다양한 제재수단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공시 위반이 반복되는 경우, 가중처벌해 조사업무규정 중 자기주식 공시 제재 관련 조항을 전면 개정된다.
금융위원회는 “개정안을 통해 상장법인이 자기주식을 특정 주주만을 위한 수단이 아닌 전체 주주의 이익을 위한 주주환원 수단으로 인식을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형식적 기재 여전…투자자 불신 키울수 있어
금감원은 지난 7월 지난해 기업들이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점검한 결과 자사주와 주주제안 관련 공시가 여전히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기한 내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거나, 보유 현황·취득·처리계획을 ‘계획 없음’으로 단순 기재하는 사례도 빈번했다. 주주제안권이 행사된 상장사 187곳 중 상당수는 제안 목적이나 주총 주요 논의 내용을 ‘특이사항 없음’으로 기재해 형식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제도 변화가 주주환원 확대와 자본시장 신뢰 제고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정부 정책이 기업의 자사주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투명성 확대는 장기적으로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 자사주 활용 소극적 기업들도 부담
자사주를 많이 보유하고도 활용 계획이 불투명한 기업들도 이번 규제 강화로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신영증권은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자사주 보유비율이 무려 53%에 달한다. 1994년부터 자사주 매입이 이어져왔으나, 단 한 차례도 소각하지 않았다. 현재까지도 자사주 소각과 관련해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제시하지 않았다.
한샘 역시 자사주 비중이 29.5%에 이르지만 현재까지 자사주 소각이나 배당 방침에 대한 구체적은 입장은 내놓지 않았다. 올해 반기보고서를 통해 자사주와 관련된 계획은 아직 결정된 바가 없으며 향후 이사회 결의시 공시를 통해 안내할 계획이라고만 공시했다.
샘표식품도 지난 1분기 기준 자사주 비율이 30%에 육박하지만 현재까지 자사주 소각과 관련해 구체적 실행 계획은 아직 없다.
이처럼 기업이 자사주를 쌓아두기만 하고 활용 계획을 제시하지 않을 경우, 공시 강화로 인해 시장과 투자자의 감시가 높아져 직접적인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금융당국은 이번 개정안을 통해 자사주가 전체 주주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자리 잡도록 유도할 방침이며, 이를 통해 ‘보여주기식’ 주주환원과 실질적 주주환원을 구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