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경제신문=장용준 기자 | 성수전략정비구역1지구(성수1지구) 재개발 사업이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서울시가 조합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제기한 의혹이 모두 무혐의로 종결됐지만, 비대위가 조합장 해임총회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어 내홍이 수습되지 않은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비대위 카드’가 불발될 경우 역풍이 불어 수주의지가 강한 현대건설의 성수1지구 시공권 확보도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비대위가 제기한 조합 의혹…서울시 조사, 혐의 없음 결론
3일 도시정비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시가 지난달 13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성동구 성수1지구 조합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제기된 의혹이 모두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앞서 성수1지구 비대위는 서울시를 비롯한 인허가 기관에 조합이 특정 건설사와 유착돼 있다며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해왔다. 이에 서울시는 실태조사를 진행했고, 비대위가 제기했던 수백건의 민원 대부분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났다.
서울시의 면밀한 실태조사 결과 조합 운영의 투명성이 입증되고 비대위가 반복적으로 제기됐던 문제에 대한 오해가 풀리게 되면서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재개발 사업이 탄력을 받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진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을 두고 익명을 요구한 한 조합원은 “비대위 바람대로 실태조사가 이뤄졌고 사실상 ‘문제없음’으로 결론 나 이제 비대위가 사업 지연하는 행위를 멈춰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했다. 현장의 분위기는 이 같은 목소리가 많았다.
◆비대위, 서울시 실태조사 결과 불복…조합장 해임총회 강행 의지
하지만 비대위는 서울시의 실태조사에 불복하며 조합장 해임총회를 강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 사태 수습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 비대위 핵심 구성원은 조합원들이 의견을 공유하는 밴드에 “이번 서울시 실태조사 결과는 특정 건설사와 조합의 유착관계를 어떻게든 정당화시키려고 하는 합작품에 불과하다”며 “알맹이 빠진 실태조사 결과”다는 글을 남겼다. 이어 “조합장은 하루 속히 사퇴하거나 해임 후 직무대행 체제에서 입찰이 진행되어야 한다”며 “만약 이를 거부하고 시공자 선정절차를 진행시키려면 해당 건설회사는 우리 성수 1지구의 사업지연을 시킨 당사자로서 입찰에서 완전히 배제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성수1지구 비대위 활동은 사업 초반에 명분을 얻지 못하다 조합장 해임안을 추진한 시기부터 적극적인 민원 제기와 부정 여론 형성, 홍보 인력 동원 등을 통해 조직력을 확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부 조합원들은 “해임을 주도하고 있는 비대위 조합원들의 면면을 보면 성수1지구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이 적거나 적극적인 비대위 활동을 해왔던 경우가 다수였다”고 지적했다.
익명의 한 조합원은 “과거 성수1지구 조합을 상대로 조합설립 취소 소송을 제기하고 현재 1평이 채 안되는 공유지분을 보유한 조합원을 비롯해 타 구역에서 비대위 활동을 주도했던 경험을 가진 조합원, 그리고 과소필지로 현금청산 대상자이면서 구역 내 부동산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현재 해임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비대위를 주도하는 일부 인물이 과거 극심한 내홍을 겪었던 흑석동 재개발 현장에서 활동했던 이들과 동일 인물이라는 소문이 있다”며 “비대위 활동의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특정 세력이 여러 정비사업장을 옮겨 다니며 의도적으로 분쟁을 만들어 사업을 지연시키고 이권을 챙기는 전문적인 행태가 성수1지구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현대건설이 특정 전문 업체를 통해 비대위를 지원하고 있다는 개입설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비대위 활동 격화 시 사업 지연 우려 커져
정비업계 일각에서는 비대위 활동이 격화될 경우 흑석동 재개발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져가고 있다. 앞서 서울 동작구 흑석9구역의 경우 비대위가 조합장 해임, 시공사 계약 해지를 주도하면서 극심한 내부 갈등을 겪었고, 이 과정에서 사업은 파행을 거듭했다. 결국 시공사가 교체되며 현대건설이 흑석9구역 재개발 사업을 수주했고, 현대건설은 올해 4월 사업비를 돌연 약 2000억원 가량 증액한 바 있다.
당시 현대건설이 흑석9구역 조합에 제안한 총공사비는 2021년 시공사 선정 당시 산정했던 4489억원에서 2000억원가량 늘어난 6518억원으로 책정됐다. 기존 공사비 대비 약 45% 가까이 오른 수준이다.
비대위 활동은 건설사에도 큰 부담이다. 지난 달 29일 입찰을 마감한 성수2지구에 건설사 한 곳도 입찰에 참여하지 않아 시공사 선정이 내년 이후로 미뤄졌다.
한 정비업계 전문가는 “비대위가 조합장 사퇴를 압박하고 집행부와 갈등을 빚는 등 입찰을 포기할 만한 심각한 사안들이 발생했다”며 “협력 주체가 모호한 현장에 선뜻 발 딛을 건설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정비업계 전문가는 “많은 정비사업에서 비대위들이 사업지연의 원인으로 지목된다”면서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뒤늦게 사업에 참여한 건설사들이 비대위와 손잡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건설사가 잡은 손을 놓거나 비대위가 와해될 경우 치명적 결과가 발생할 것”이라며 “뒷배 잃은 비대위는 막대한 재산손실을 맞을 수도 있고 비대위 끈 떨어진 건설사는 수주 실패하는 경우가 다반사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