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경제신문=김선재 기자 |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인구와 동남아시아(ASEAN) 국가에서 가장 큰 경제 규모를 보유해 글로벌 확장을 꾀하는 우리나라 금융사들의 최대 격전지로 꼽힌다.
특히, 높은 수준의 경제 성장률과 전체 인구의 70%에 달하는 생산가능인구 비중, 높은 수준의 스마트폰 보급률과 다양한 핀테크 서비스 등 디지털 금융 인프라 발전에 불구하고, 금융 침투율이 낮아 금융사에게 매력적인 시장으로 평가된다.
그런 만큼 현지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금융사간 경쟁은 치열하다. 은행만 해도 100개 이상이 영업 중이고, 그중에서도 4대 대형은행의 시장 점유율이 절반 이상이다. 게다가 현지 금융당국의 규제는 빠른 체질 개선과 공격적인 영업을 통한 시장 확장을 제한하는 요소다.
이에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금융사는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바탕으로 시장을 확장하며 성장의 발판을 다지고 있다.
◆세계 4위 인구 대국…2045년 ‘세계 4위 경제 대국’ 도약 선언
인도네시아 인구는 2억8500만명 규모로, 중국과 인도,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국가다. 또한 전체 인구의 약 71%가 생산가능인구(15~64세)고, 중위 연령이 약 30.4세일 정도로 젊은 인구 구조를 갖고 있다. 즉, 풍부한 노동력과 견고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이는 모든 경제활동이 인구를 기반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에 주요 투자은행(IB)과 국제기관들은 인도네시아가 향후 세계 4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ricewaterhouseCoopers, PwC)는 2017년 2월 발간한 ‘The World in 2050’에서 인도네시아가 2050년에 중국과 인도, 미국에 이은 세계 4위의 경제 대국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골드만삭스 역시 2022년 ‘2075년 글로벌 경제 전망’ 보고서를 통해 같은 전망을 내놨다.
관련해서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난해 기준 약 1조4000억달러 수준인 국내총생산(GDP)을 인도네시아 독립 100주년이 되는 2045년까지 연평균 6~7%의 성장을 통해 현재의 6~7배 수준인 9조1000억달러(최대 9조8000억달러), 국민 1인당 GDP 2만9000~3만300달러를 달성해 세계 4위의 경제 대국으로 도약하겠다는 국가 비전 ‘Indonesia Emas 2045’를 공표했다.
실제로 인도네시아 경제는 지난해 5.03% 성장하면서 3년 연속 5%대 성장률을 기록했다. 2020년과 2021년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각각 –2.07%, 3.70% 성장했지만, 이를 제외하면 2015년부터 꾸준하게 5% 내외의 높은 성장률을 유지했다.
이처럼 거대한 인구를 바탕으로 한 높은 성장률과 디지털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소비 시장을 보유하고 있지만, 인도네시아의 금융 침투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업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2023년 기준 15세 이상 인도네시아 성인 중 은행 계좌를 보유한 사람은 전체의 61.78%에 불과했다. 인도네시아 금융감독청(OJK)에 따르면 지난해 인도네시아의 금융 침투율은 75.02%였다.
또한 글로벌 디지털 인사이트 보고서 ‘데이터리포털(DataReportal)’에 따르면 지난해 1월 기준 인도네시아 인구 대비 휴대전화 개통 수 비중은 126.8%에 이르고, 생산가능인구 중 휴대전화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비중은 99.4%에 달했다.
결국 높은 수준의 경제 발전은 곧 금융시장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인도네시아 금융시장은 그만큼 잠재력이 높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스마트폰에 기반해 생활 전반에 자리 잡은 디지털 습관은 높은 금융 접근성을 제공한다.
현지 진출 국내 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인도네시아는 은행 계좌를 보유한 사람이 전체의 60% 수준에 불과하고, 금융 문해력이 상당히 낮은, 아직 미성숙한 시장인 만큼 가능성도 높다”며 “경제 발전으로 중산층이 늘어나게 되면 그들에 대한 금융 공급을 통해 시장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30개 금융사 진출…규제·금융인프라·문화 등 녹록지 않은 영업환경
이같은 가능성을 보고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금융사는 30곳에 이른다. 금융감독원 금융중심지지원센터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인도네시아이 현지법인 및 사무소를 운영 중인 금융사는 ▲은행 7곳 ▲증권 7곳 ▲자산운용사 2곳 ▲생명보험사 1곳 ▲손해보험사 5곳 ▲카드사 4곳 ▲캐피탈사 4곳이다. 이들은 현지법인 30개, 사무소 4개를 두고 있다.
이중 현지에 가장 많은 법인을 둔 금융사는 KB금융그룹이다. 인도네시아를 ‘제2의 마더마켓(Second Mother Market)’으로 설정한 KB금융그룹은 은행·증권·카드·보험·캐피탈 등 총 7개 계열사를 진출시키고, 계열사간 협업을 통한 성공적인 시장 안착과 성장을 추진하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인도네시아 디지털은행 ‘슈퍼뱅크’에 지분을 투자하는 방식으로 현지에 진출했다. 지난해 6월 공식 론칭한 ‘슈퍼뱅크’는 동남아시아 최대 슈퍼앱 ‘그랩(Grab)’과 싱가포르텔레콤(싱텔, Singtel), 인도네시아 최대 미디어 기업인 ‘엠텍(Emtek)’을 주요 주주로 한다. 카카오뱅크는 2023년 9월 ‘그랩’과 동남아시아 사업 협력을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1032억7200만원을 투자해 ‘슈퍼뱅크’ 지분 10.05%를 획득했다.
한화생명은 지난 6월 인도네시아 재계 6위인 ‘리포그룹’이 보유한 ‘노부은행(Nobu Bank)’의 지분 40% 투자를 완료해 경영권을 포함한 주요 주주 지위를 확보했다.
인도네시아 금융시장의 높은 성장 잠재력에 많은 국내 금융사들이 현지에 진출하고 있지만, 현지 영업 환경은 절대 녹록하지 않다. 현지에 진출한 국내 은행들은 현지 대기업이나 한국계 기업에 대한 대출을 주로 하는데, 현지에는 은행만 총 105개가 영업 중이다. 이중 ▲BCA ▲BRI ▲Mandiri ▲BNI 등 4개 대형은행(민영 1, 국영 3)이 현지 금융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또 다른 현지 진출 국내 은행 고위 관계자는 “한국계 및 로컬 대기업의 경우 현지에서 치열한 영업, 금리 경쟁으로 인해 수익성이 점차 악화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에 은행들은 리테일 쪽으로 확장을 꾀하고 있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개인 신용정보 등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가 잘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인 신용정보를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족하고, 그마저도 신뢰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현지에 진출한 금융사들은 담보 중심 대출이나 거래 중인 기업의 직원에 대한 신용대출 등 한정적인 영역에서 금융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종교 국가는 아니지만, 국민의 약 87%가 ‘무슬림’인 만큼 문화나 금융 관습 측면에서 이슬람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Sharia)’에 따라 자본 거래에 대해 이자를 받는 것을 부당한 것으로 여긴다. 자본은 실물 거래나 위험을 공유하는 상업 활동을 통해서만 가치가 창출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업 실패 등으로 대출 상환이 어려운 경우 이를 상환하지 않거나 이자 감면 등 구조조정을 요청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현지 금융당국의 강력한 규제도 공격적인 영업 확장을 제한하는 요인이다. 금융감독청(OJK)은 외국계 금융사에 대해 주재원 수를 제한하고, 지점장을 반드시 현지인으로 두도록 하는 등 인력 운용에서의 자율성을 제한하고 있다. 또한 매년 3개월 혹은 그 이상의 기간에 걸쳐 종합검사를 진행하고, 다음 해 사업계획에 대해서도 지점 및 영업점 수, 신상품 출시 계획 등 세부적인 사업 전략을 직접 들여다보고 심사한다.
은행 현지 법인 관계자는 “규제 환경이 쉽지 않지만, 가능성이 높은 시장인 만큼 규제에 대응하면서 고객 기반 확대를 통한 시장 확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