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경제신문=김미소 기자 |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핵심으로 하는 디지털자산 2단계 법안이 연내 발의될 것이라는 정부의 계획이 관계 부처와 업계 간 의견 대립으로 점차 불투명해지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 기획재정부 사이에서 핵심 쟁점에 대한 조율이 이뤄지지 않은 데다 국회도 정부안의 미완성 상태를 이유로 심사 자체를 보류하면서 논의가 사실상 교착 상태에 빠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25일 정치권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전날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에서는 정부가 준비 중인 디지털자산 기본법 정부안이 심사 안건에서 제외됐다. 법안의 뼈대를 구성하는 핵심 내용이 정부안에 담겨 있는데도 정작 정부 내부 의견이 정리되지 않아 국회가 논의를 이어가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초 금융당국은 올해 안에 법안을 확정해 제출한다는 계획을 유지해 왔지만, 첫 심사 단계에서부터 걸림돌이 생기며 일정 지연이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가장 큰 쟁점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누가 발행할 수 있는가다. 한국은행은 스테이블코인이 사실상 화폐 기능을 수행하며 결제·송금 등 금융 시스템과 직접 연결되는 만큼, 발행사 지분의 51%를 반드시 은행 컨소시엄이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은행이 대주주가 돼야 금산분리 원칙이 유지되고 통화정책을 둘러싼 위험도 관리할 수 있으며 자금세탁과 외환 규제 위반 가능성에 대비할 수 있다는 논리다.
다만, 업계는 은행 중심 구조는 스테이블코인이 가진 기술·산업적 혁신성을 떨어뜨리고 확장성 역시 크게 제한할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발행주체 문제와 함께 감독 체계 또한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 대한 공동검사권과 보다 강화된 모니터링 권한을 요구하고 있지만, 금융위원회는 이러한 요구가 감독권의 중복을 초래하고 규모가 작은 발행사까지 중앙은행의 검사 대상이 되어 지나친 규제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금융위는 국회 법률 검토보고서에서도 한은과 기획재정부에 긴급조치 요청권이나 거래중단 명령 요청권을 부여하는 방안은 해외 사례에서도 찾아보기 어렵고 실익도 크지 않다는 의견을 명확히 밝혔다. 반면, 한국은행은 발행주체와 감독권뿐 아니라 발행량 제한과 준비자산 구성 비율까지 엄격하게 규정해야 한다며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처럼 핵심 사안 대부분에서 금융위와 한은의 입장이 강하게 충돌하면서 국회도 정부안이 정리되기 전에는 본격적인 논의가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여야 의원들이 이미 발의한 관련 법안이 존재하지만, 전체 제도 틀이 정부안에 맞춰져 있어 정부안 없이 세부 심사에 들어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국회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금융권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반영해 올해 안에 법안을 완성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결국 스테이블코인 발행 구조와 감독 권한 배분이라는 핵심 과제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한 입법 속도가 빠르게 개선되기 어렵고, 정부가 강조해 온 연내 입법 계획 역시 현실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관련 이해관계자들의 의견 차가 여전히 크고 조정 작업도 진척되지 않으면서 디지털자산 시장의 제도 공백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동시에 제기된다.
